검색결과 리스트
글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2
추천도 생각 보다 많이 받고 댓글 써 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아 기쁜 맘으로 얘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혹시, 제 글 퍼 가신다면 개인 블로그나 카페, 타 괴담 사이트 등 어디든 퍼 가셔도 상관 없습니다.
굳이 제게 물어 보고 허락 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출처랑 글 변형만 시키지 않으시면 전 상관 없으니 맘껏 가져 가십시요.
제 얘기가 널리 읽혀지면 저야 뿌듯하고 좋치요. 데헷!
지금 할 얘기는 제 큰 외삼촌에 얽힌 얘기입니다.
어머니와 제가 외가집으로 이사간지 햇수론 2년쯤, 달수론 한 20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상주로 간 게 3살 가을쯤이었는데 그 일이 일어난 건 두 해후 늦 봄이었으니까요.
제가 그 날을 또렷히 기억하는 건 그 날 벌어진 일이 참 불가사의 하고 많은 소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늦은 봄이었습니다.
한 4월쯤 되었을라나요?
아시겠지만 산골은 날이 늦게 풀립니다.
겨우 그때 쯤에야 그 동네는 농사 준비에 분주했고, 제가 살던 그 마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의 매일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선 늦도록 밭이며 논에 나가시어 농사 준비에 늦은 밤까지 수고를 하셨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농사 준비 거들랴, 집안 일 하랴 무척 바쁘셨지요.
그 날도 외 조부모님과 어머닌 밭인지 논인지에 나가시어 늦게 까지 일하셨습니다.
전 같이 있다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상주 할머니 댁에 가서 간식을 먹었지요.
할머니 댁에는 약과며 떡이 떨어질 날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주려고 굿하는 데서 얻어 오셨던 거 같아요.
그 날도 할머니가 주시는 약과와 장작불에 먹음직하게 구어 주시는 떡을 먹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집에 돌아 오시는 걸 보고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엘 갔지요.
집에 오신 어머니는 아마 외 조부모님 보다 먼저 집에 오시어 식사 준비를 하시려던 것 같았습니다.
동생을 제게 맡기시고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셨습니다.
구수한 밥 냄새가 집안에 퍼져 나가자 전 또 허기를 느꼈지요. 뱃속에 걸뱅이(경상도선 거지를 걸뱅이라고...)가 들었는지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상주 할머니 댁에서 먹은 떡이며 약과가 다 소화된 것을 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던 거 같습니다.
이윽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겨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어 오셨고, 우리 식구는 밥상에 둘러 앉아 늦은 저녁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맛있게 밥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당에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할머닌 누군교? 하고 물으셨고,
마당에선 좋아 할매야! 하는 부르는 소리가 났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주 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는 시골 집에 흔한 여닫이 문을 여시고는 반색을 하셨지요, 할매 어서 들어 와서 밥 한술 같이 뜨소!~ 하고요.
그런데 마당에 서 계신 상주 할머니 안색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린 제가 느끼기에도 평소랑은 너무 다르신 할매가 이상하게 보였지요.
외 할머니도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셨는지,
와 그라는교? 하시고선 식사를 하시다 말고 수저를 놓으시고는 문을 닫으시고 마당으로 나가셨지요.
그리고는 마당에서 두 할머니가 수군수군 말하는 소리가 한참을 들리더니,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고는 외 할머니가 사색이 되어 방으로 뛰어 들어 오셨습니다.
외 할아버지를 위시한 저흰 모두 놀라서 뜨던 수저를 멈추고 얼음이 되었지요.
할아버진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이냐며 역정을 내셨지만 할머닌 그런 할아버지의 말에 대꾸도 않으시고는 안방에 놓여 있던 전화기로 달려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봐도 떨리는 손놀림으로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하시는 것이었어요.
우린 할머니의 서슬에 뭐라 묻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지켜 봤지요.
몇 번의 신호가 가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그리곤 곧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나자,
할머닌 급하게 ㅇㅇ이 애미냐? 애비는 집에 들어 왔냐? 하시는 것이었어요.
ㅇㅇ이는 큰 외 삼촌네 딸(사촌 누나)의 이름이었죠.
할머니가 전화를 거신 곳은 대도시(아마 대구였을껄요?) 사시던 큰 외삼촌네 집이었고, 전화를 받으신 분은 큰 외숙모셨죠.
그리고는 한참 말씀도 없이 외숙모 얘길 듣는 거 같더니 갑자기 전화기를 힘 없이 떨구시며 무너지 듯 주저 앉으시더군요.
그리고선 계속 이 일을 어쩜 좋노, 이 일을 어쩜 좋노 하고 혼잣말을 하시기 시작하셨어요.
우린 궁금했지만 할머니 서슬에 누구도 묻질 못 했는데 참다 못한 할아버지께서 벌컥 화를 내시면 뭔일이고? 하시며 고함을 치셨죠.
그 말조차 안 들리시는지 할머닌 계속 그말을 되뇌이시며 전화 번호를 적어 둔 수첩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하셨어요.
항상 순종적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말씀을 그리 무시하신 건 평생 첨보는 희귀한 광경이었다고 나중에 엄마가 얘기하시더군요.
할머닌 그만큼 정신이 없으셨던 거지요.....
그리고는 수첩에서 뭔가를 찾아 전화 버튼을 미친 듯 눌러대기 시작하셨어요.
그 땐 지금처럼 핸드폰이 대중화 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전화가 있어도 무선국이 얼마 없어 그런 두메 산골까지는 전화가 될 턱이 없던 그런 시절이었죠.
아주 부자가 아니면 전부 삐삐라고 부르던 페이저를 사용하던 시절이었고, 할머니는 큰 외삼촌 호출기로 계속 호출을 하셨어요.
정말, 1분에 한 번 씩은 호출을 하신 거 같아요.
삼촌은 답장이 없었고, 보다 못 한 어머니가 할머니께 내가 해볼께라시면서 전화를 뺏으시고는 할머니 대신 호출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할머니는 호출이라도 하실 줄 아시던 신식 할머니셨지만 딱 거기까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께 호출하시면서 갈고 닦으신 현란한 기술을 접목하셨죠.
삐삐란 물건이 전화로 호출하면 호출한 상대방 번호가 찍히는데 거기에 여러가지 숫자를 더해서 뭔가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더군요.
주로 번호 뒤에 1004를 찍으면 천사....... 연인끼리 자기를 표시 한다던가, 기분이 나쁘다던가 욕을 할때는1092....씹탱구2라고 읽는다죠? 1818 .....씨8씨8이라던가, 급할 때는 828282 빨리 빨리 등의 숫자를 더 찍어 표시를 했다고 해요.
엄마의 손가락이 전화번호 다이얼을 날라 다니고 한참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어요.
큰 외삼촌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외 할머니는 니 오데고?를 연발하셨고,
삼촌의 얘길 들으시는지 잠시 계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그러셨어요.
니 무조건 오늘 집에 올 생각 말고 상주서 자고 아침에 오라고요.
삼촌이 뭐라고 반항을 했던지 양반 중 양반이셨던 할머니가 거의 욕을 하시면서 오면 직여 뿐다고.......
몇 번을 단단히 주의를 주신 후 다짐에 다짐을 받으시고는 길고 긴 통화가 끝났습니다.
평소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할 말만 딱 하고 끊으시던 분이 그 땐 그렇게 오래 통화를 하시고도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제사 마당에 안절부절하고 서 계시는 상주 할매를 보시곤 방으로 들어 오시라고 했어요.
상주 할머니가 앉으시고는 하시는 말씀에 저희 가족은 전부 놀라 까무러칠뻔 했지요.
제가 할머니댁에서 놀다가 온 후 상주 할머니는 피곤함을 느끼시고는 잠깐 초저녁 잠을 주무셨다고 해요.
그런데 꿈을 꾸신 거였어요.
선명하게 보이는 꿈 속에서 할머니는 누군가를 봤다고 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터래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는 팔도 부러졌는지 이상하게 꺾여 있고, 어디다 부딪혔는지 얼굴도 심하게 망가진 모습이더래요.
딱 봐도 저건 산 사람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드셨는데 자세히 보니 낯이 익더라고 하셨어요.
자세히 보이깐 그게 진이 더라카이!~ 라고 할머니가 얘길 하셨어요.
진이.... 저희 큰 외삼촌 함자가 끝자가 '진' 이거든요.
경상도 사람들은 그렇게 손 아래 사람은 끝자로 많이 불러요.
할머니가 놀라서 꿈에서도 야가 와이라고 여그 서 있노? 하시는데 외삼촌 주위로 잡귀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있더래요.
그 모습이 흡사 새로운 동료가 생겨서 좋다, 신난다 하는 표정이더래요.
할머니는 얼른 다가가서는 니 여 있으면 안된다 얼른 가자고 잡아 끄셨는데 삼촌은 슬픈 표정으로 꼼짝도 않으시더래요.
그리고는 삼촌 주위로 춤울 추고 있던 잡귀들이 할머니를 조소하 듯 그랬다고 합니다.
할매, 헛힘 빼지 말고 가소!!! 얜 우리 꺼야!~~~~~
할머니는 화가 나서 이 육시랄 것들 하시면서 뚜디려 패려 쫓아 다니는데 귀신들은 할머니를 약 올리면서 요리조리 피하더랍니다.
할머니가 너무 분해 씩씩 거리고 있었는데 그때서야 가만 주위를 둘러보게 되니 풍경이 많이 낯이 익더래요.
그곳은 마을로 들어오던 입구쪽의 산 길이었답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시고는 절대 마을로 못 오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 우리집으로 뛰어 오셨던 거죠.
기가 막힌 건 그 때 절대 올 일이 없으셨던 큰 외 삼촌은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지셔서는 그 날 회사에서 다음 날 월차인지 휴가인지를 내시고 혼자 상주로 향했었다고 해요.
할머니가 전화 하시자 외숙모는 그 얘길 하시면서 집에 도착할 때가 되었을 꺼라고 얘기하셨고,
할머니는 졸도 직전까지 가셨던 거죠.
그나마 삼촌이 오랜만에 집에 오신다고 상주 시내에서 고기랑 과일 같은 걸 사시는 바람에 그나마 연락이 간신히 닿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얘길하며 온 식구가 뭔지 모를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던 때,
밖에서 뭔가 큰 소리가 들렸어요.
불길했지만 원래 산골엔 간혹, 특히 해빙기엔 바위 같은 게 굴러 떨어지는 일이 왕왕 있었기에 그런건가 보다 했고, 우린 그나마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에 마을에선 난리가 났어요.
밤 사이 마을 진입로 얼마 못 미쳐서 유일한 외부 통로인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가 해빙되면서 떨어진 큰 바위에 막혀버린 거였어요.
전날 밤에 들었던 소리가 그 바위 굴러 떨어지는 소리였었지요.
밤 사이 마을로 들어올 차도 없어 모르고 있다가 새벽 마을로 들어오는 첫 버스에 발견이 되었지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들 몰려 나갔는데 버스 뒤로 오도 가도 못 하고 서 있던 몇 대의 차들 사이에 큰 외삼촌 차가......
사람 힘으론 못 하고 결국 포크레인이 와서 치웠지요.
그 날 마을에 있던 초, 중, 고생 형 누나들은 전원 지각을 하고. 삼촌이 집에 와서 한 얘긴 정말 위기 일발이었어요.
상주에 오셔선 과일이랑 고기 사신다고 잠시 지체하시고는 곧 출발을 하셨는데 계속 할머니께 호출이 오더랍니다.
삼촌은 거기서 차로 한 20분이면 집에 도착하는지라 그냥 무시하곤 출발 하셨다고 해요.
그러다 엄마가 보낸 호출을 받으신 거죠.
82821818......
삼촌은 이건 뭐냐는 생각에 마침 보이는 공중 전화 앞에 차를 세우시곤 전화를 하신 거였어요.
그 공중 전화가 시내서 우리 동네까지 오기 전에 있던 마지막 공중 전화였다고 해요.
그 바위가 굴러 떨어진 곳이 위치가 절묘해서 커브 돌자마자였거든요.
그냥 그대로 집에 오셨다면 바위에 깔리셨던지 아니면 삼촌 성격에 잘 아는 길이라 속력을 내셨을 거니 피할 사이도, 브레이크 밟을 사이도 없이 충돌하셨을 거고. 그렇다면 포크레인으로 겨우 치운 그 바위와 충돌하셨으면 살아 나셨을까요?
그 뒤론 큰 삼촌은 항상 명절 때나 집에 오실 땐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이랑 같은 걸 상주 할머니께 선물하셨고, 일생의 은인으로 여겨 지금도 상주 할머니 기일을 챙겨주시고 성묘도 가십니다.
자손들이 챙기는지 안 챙기는진 몰라도 삼촌도 나 살아서는 그리 하신다고 하셔요.
얼마나 잘 챙기시는지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지금은 단종되어 없는 솔이란 담배도 할머니 제사용으로 냉동실에 몇갑을 근 20년째 보관 중이시래요.
From_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5660740&bbsId=G005&itemId=145&pageIndex=1
'Paranormal or Horror Act > <상주 할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5 (0) | 2016.07.07 |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4 (0) | 2016.07.07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3(下) (0) | 2016.07.07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3(上) (0) | 2016.07.07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1 (0) | 2016.07.07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1
안녕하십니까? 처음 인사 드립니다.
다음 웹툰인 어우내를 무지 좋아 하는 초보 글쓴이 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작가님 이름 빌려 백두부좋아로 했습니다. 방끗!
괴담이라고 표시해야 하나 미스테리라고 표시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제 경험담인 관계로 경험으로 표시했습니다.
안 믿으시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 제 경험담이 틀림 없으니 전 떳떳합니다. 흐~
일단 배경 설명 좀 하고 얘길 시작해야겠지요?
제 어린 시절 얘기 입니다.
글로 쓸 경험담이 몇편이나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한 10편쯤은 될 거 같은데..... 더 될지도 모자랄지도 모르겠지만 글이 막혀 도저히 올릴 수준이 못 된다 생각 되어지는 거 이외엔 될 수 있으면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졸필이나마 최대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략 초등학교 5학년 때 까지의 일이고, 6학년 때 집이 다 서울로 이사가기 전까지,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이 되시는 상주 할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고, 당신이 돌아 가신 후의 이야기가 나오면 글쓴이가 글이 다 떨어져 가는구나!! 하고 생각 해 주시면 됩니다.
마지막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겪는 얘기까지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하는 처지라 매일 올리거나 하지는 못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다보면 갑자기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건데 그럼 쓴데 까지 한 편을 두 번 정도에 나누어 올려도 될런지요? 글 중간에 끊어지면 저도 짜증 나거든요. 싫으시면 저장 해두고 완전히 한 편 다 써서 완결지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같은 졸필에 뭔 그런 호사를 누리겠습니까만, 현기증 난단 말이예요나 글 내 놓아라 그러심 안 됩니다. 데헷! 데헷!!
얘기는 지금으로 부터 거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제가 이제 30초반이니 제가 기억하는 거의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 저희 집은 서울에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가구 공장과 기타 재산, 그리고 우리 가족의 유일한 부동산이었던 집까지 팔아 빚 잔치를 하고는 아버지께선 남의 공장에 공장장으로 취직을 하셨고, 방 한칸 마련할 돈 조차 없었던 어머니와 저와 두살 터울인 제 동생은 경북 상주에 있던 외가집에 얹혀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진 명절이나 연휴때나 간혹 시간을 내시어 우리 가족을 보러 오셨고, 그 외엔 공장에 딸린 작은 집에서 다른 공장 식구들과 합숙을 하시며 생활하셨죠. 집에 오셔서도 장인 장모님인 외 할아버지, 외 할머니께 죄송하시여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곤, 하루 겨우 묵으시곤, 얼마간의 돈이 든 봉투를 할머니와 어머니께 쥐어 드리곤 도망치 듯 떠나셨죠.
아버지가 떠나시면 외 할아버진 애궂은 담배만 태우셨고, 외 할머니의 긴 한숨이 이어졌고. 어머닌 우리가 볼새라 서둘러 부엌으로 가셔선
부뚜막 구석에 쭈구리고 앉으셔서 소리 없이 우셨고...
.
전,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께 말 걸면 안 되겠구나 하고 마루에 나와 시무룩하게 앉아 괜히 발로 맨땅을 차며 앉아 있었어요.
그럼 항상 어찌 아셨는지 오늘부터 해 드릴 얘기의 주인공이신 상주 할머니가 오셔선 대문에 서서 손짓으로 제게 어서 나오라는 동작을 취하셨고, 시무룩하게 고개 숙이고 나오는 제 손을 꼭 잡으시곤 바로 옆집인 할머니네 집으로 데리고 가셔선 떡이며 약과며 사탕이나 홍시 등의 주전부리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전 맛난 간식을 먹으며 애답게 금방 기분이 좋아져 기운을 차리곤 했습니다.
상주 할머니는 저완 아무런 혈연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제겐 혈연 이상인 분이시기도 하시죠.
할머니 살아 생전에 절 보시곤 할머니께선 자주 너와 난 아주 많은 인연으로 얽혀 있는 사이라고 종종 얘길 하셨는데,
의미를 여쭈면 항상 뜻 모를 미소로만 화답을 하셨답니다.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우리 가족이 상주 외가댁에 더부살이를 하려고 용달 트럭에 간단한 짐을 싣고 가던 첫날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세간살이를 아버지가 다니시는 공장 창고 한 귀퉁이를 빌려 쌓아 놓고는 정말 필요한 단촐한 짐만 가지곤 외가집으로 향했습니다.
외가집에 몇 번 가보긴 했겠지만, 그땐 저도 3세 이전의 유아기 인지라 딱히 기억 나는건 없고, 그때 기억이 외가집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었습니다.
나름 변두리긴 하지만 서울에 살던 나는 처음 가보는 시골 산길이 신기하기만 했죠.
지금은 안 가본지 오래됐습니다. 외 조부모님도 두 분 다 돌아 가신지 오래되었고, 상주 할머니는 외 할머니 보다도 더 일찍 돌아가셨고. 딱히 다른 친척도 없는 그곳은 인젠 제겐 어린 시절 추억이나 좀 있는 외지니까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 어린 시절의 상주는 정말 산간 오지였습니다.
산골 깊이 있는 도시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산속에 도시가 있단 것도 신기할 정도로요.
그나마 외가집은 그 산골 도시인 상주서도 도심이 아닌 한참을 더 들어가던 두메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렇게 외가집에 도착을 하였고, 짐을 내리곤 정리는 엄마에게 맡기고는 꼬마 좋아는 앞으로 놀터가 될 동네 탐사에 나섰지요.
마을 여기 저기를 구경하고 만나는 어른 마다 첨 보는 아이를 보시곤 제 정체를 물으셨고, 전 열심히 마을 어른들께 재롱을 떨면서 제 피알을 했지요. 제 생존 본능이 여기서 이쁨 받으며 살려면 어른들께 잘 보여야 한단 걸 알려 주더군요.
마을에 하나 있던 정말 조그만 구멍가게(점방이라고 불렀는데......)앞에 막걸리를 마시고 계시던 마을 어른 분들이 이것 저것 물으시고는 귀엽다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제 소중이도 한번 만지시곤 장군감이라고 웃기도 하셨는데....... 요즘 같으면 징역 몇년이나 받으실라나?
그리곤, 과자 한 봉지 사주셔서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다 다달았을 무렵, 옆집 담장으로 누군가 저를 부르는 겁니다.
바로 상주 할머니셨습니다.
부르는 소리에 소리 나는 방향을 쳐다보니 정말 무섭게 생기신 할머니 한 분이 얕은 담 너머로 저를 내려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처음 상주 할머니를 본 소감은 한 마디로 '무섭다.' 였지요.
어린 기억에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신 할머니 한 분이 표정 하나 없는 잔뜩 주름 진 무서운 얼굴로 절 내려다 보고 계셨습니다.
전 얼어서 그 자리에 굳었죠.
잠시 절 쳐다 보시던 할머니는 언제 내가 그리 무서운 표정을 지었냐는 듯 주름진 얼굴 한가득 환하게 웃음을 머금으시곤, 제게 니가 옆집 손자 좋아구나? 하셨습니다.
얼결에 인사를 하는 제게 할머니는 니 얘기 너희 할머니한테 많이 들었다시며 시골로 와서 불편하고 고생이 많겠구나 하시면서 심심하면 맛난 거 많이 줄테니 할미한테 자주 놀러 오라 하셨지요.
어린 마음에 보기보다 안 무서운 좋은 할머니라고 생각을 하곤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외 조부모님과 엄마랑 둘러 앉아 저녁을 먹을 때 얘길 하다가 그 할머니 얘길 했어요, 옆집 할머니 봤다고.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 무섭다고 친해졌다며 아이답게 얘길하니, 외 할머니와 엄마는 살짝 놀라시며 별일이네 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주 할머니는 동네서도 소문난 호랑이 할머니였죠.
저도 살면서 여러차례 목격했지만, 몇 안 되는 동네 꼬마들은 할머니집을 빙 둘러 피해가기 바빴고, 할머니의 호통에 눈물, 콧물 쏙 뺀 이가 한둘이 아니였습니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감히 할머니께 맞서는 이가 없었지요. 조금이라도 이치에 거슬리거나 불의를 보시면 애 어른, 남녀노소 가릴거 없이 거침없이 호통으로 이어졌고, 그 동네에서 상주 할머니랑 잘 지내시는 분은 우리 외 할머니 뿐이셨답니다.
상주 할머니나 우리 외조부모님도 다 그 동네 토박이가 아니셨어요.
상주 내에서 제법 사셨던 외가는 어머니의 차이 많이 지는 큰 오빠인 큰 외삼촌이 결혼하실 때 집을 파시고는 그 돈으로 큰 외삼촌 집을 사 주셨고, 큰 도시에 살던 외삼촌이 같이 사시자 했으나 고향 땅 떠나기 싫으시다고 남은 얼마간의 돈으로 그때 사셨던 두메 산골 집을 매입 하시고 얼마간의 땅도 구입하시곤 자급 자족하며 사셨어요.
상주 할머니는 외가집과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그 마을로 흘러 들어 오셔선 외가집 옆집을 사시어 자리를 잡으신 거죠.
그게 우리 엄마가 여중생일 때였다고 하더군요.
상주 할머니는 포항인가 어느 바닷가가 고향이라고 하셨는데, 어찌 다 버리고 상주까지 흘러 들어 오신건지 그 자세한 내막은 몰라요.
다만 할머니는 단신으로 그 마을로 들어 오셔서는 좀 젊으셨을 땐 농사도 좀 지으시곤 하셨다는데,
제가 갔던 무렵엔 나이가 많이 드셔서 농사는 남에게 붙이시고 할머닌 겨우 조그만 텃밭 정도만 가꾸셨죠.
그 정도만 해도 혼자 먹고 사시긴 충분하셨겠지요.
상주 할머니께도 가족이 있다곤 얘길 들었는데 제가 그곳에 사는 동안 누군가 찾아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간혹 중년 부인들이 찾아 오곤 하였었는데 그 분들이 무녀란 건 나중에 알게 되었죠.
나중에 어머니께 커서 듣기론 자식들도 있으셨는데 할머니 성격이 너무 강하시어 사사건건 자식들과 마찰이 일어나는 바람에 거의 의절하고 사는 거라더군요.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바로 옆집 이웃 사촌이 되신 외 할머니랑 상주 할머니는 곧 베프가 되셨어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시골이 좀 남을 꺼려하잖아요?
이사를 오신 두 분은 마을의 다른 어른들과 아직 서먹 서먹하시고 특히, 상주 할머니 성격상 남과 친해지기 쉽지 않으셨을 거니 서로 의지가 되셨겠죠.
그렇게 이어진 인연은 상주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속되고, 돌아 가시고도 한참동안 제게 특별한 인연이 되어 주셨죠.
그 마을로 처음 이사 간 게 우리 어머니 중학생 때였다던데 거기서 학교 다니시려면 정말 고생하셨을 듯. 아무튼 저희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상주를 떠나실 때까지 상주 할머니께 엄청 야단 많이 맞으셨다며 간혹 추억에 잠기실 땐 그 호랑이 아줌마....하시며 치를 떠시더군요. 흐~~~
그래도 할머니가 무척 든든하고 고마웠다고 해요.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하실 때까지 통학을 하셨는데, 처녀 티가 완연해진 고등학생이 되시고 나선 일부러 일을 만드셔서 느낌이 좋치 않으신 날엔 어김없이 어머니를 데리러 학교까지 찾아 오셨답니다.
그럼 그날은 어김 없이 안 좋은 일이 생길 뻔한 날이었다고 해요.
시골이고 어두운 곳도 많고 그러다보니 꼭 그런 곳에 서식하는 동네 양아치나 불량배들 있지요? 괜히 여자들 지나가면 시비 걸고 그러는. 우리 어머니도 그런 놈들에게 시비 걸릴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할머니 호통 한 번에 고양이 앞에 쥐처럼 꽁무니를 뺐다고 합니다.
상주 할머니는 우리 외 할머니 보다 한 다섯 살쯤 위였다고 하시는데 두 분 얘기하는 걸 들으면 아주 친한 동무라고 느껴졌었어요. 상주 할머니가 돌아 가신 후 저희 외 할머니도 몇 해 후에 돌아 가셨는데 돌아 가실 때까지 상주 할머니를 항상 그리워 하시더군요.
그렇게 그 마을에서 외가집에서 살게 되고는 이상하게 할머니와 친하게 되었어요.
물론, 제가 사람을 안 가리고 잘 사귀기도 하지만 할머니께서 절 엄청 챙기고 귀여워 해 주셨거든요.
항상 할머니 집엔 뭔가 맛난 간식이 있었고, 할머니는 그걸 챙겨 주시고 제가 먹는 걸 참 기뻐 하셨어요.
전 할머니가 제게 화 내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항상 얼굴 가득 주름진 함박웃음만 기억이 나요.
읽으시는 분은 제가 어린애라 그런거 아니냐 하실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였어요.
동네 애들에게 대하는 것도 그러셨고,
제 동생은 저랑 2살 터울이고 그땐 더 귀여웠을 나이였는데도 별로 예뻐하시질 않으셨죠. 그냥 소 닭 보듯 데면데면.
그렇게 몇 개월 친분을 쌓고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할머니랑 같이 다니게 됩니다.
마실이라고 하나요?
어디 나들이 가시는 걸 무척 즐기셨던 할머니는 시내 장에 가실 때 본격적으로 절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셨어요.
그렇게 장 구경을 간날 공교롭게도 장 한 구석에선 꾕가리 소리가 막 나고 굿이 벌어지고 있었죠.
어떤 집에서 굿을 했나 봐요.
어린 전 첨 보는 구경 거리에 신이나서 구경 가자며 할머니 손을 막 잡아 끌었는데, 할머니가 단호한 목소리로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심통이난 저는 입에 바람을 잔득 집어 넣고는 왜 안 되느냐고 했는데.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할머니가 거기 가면 저 사람 다친다고요
.
그때 한창 무당이 신명이 올라 시퍼렇게 날이 선 큰 칼 위에 있었거든요.
그게 작두 타는 거란 건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는 굿판 근처도 안 가시곤 제 손을 잡고 삥 둘러 가시는 거였어요.
제가 시무룩하게 따라 가자 할머니는 그게 안 되어 보이셨던지 우리 좋아 배 안 고프냐며 우리 맛난 거 먹으러 갈까? 하시는 거였어요.
애들에게 뭐가 있어요. 그저 잼있는 구경이랑 맛난 거만 있음 세상서 젤 행복한 게 어린이지요.
한창 먹고 클 에너지 넘치는 아이인데 배가 고팠지만 망설였어요.
어머니께 단단히 교육 받고 나왔거든요. 할머니 돈 없으니까 장에 가서 뭐 사달라고 떼쓰면 안 된다고.
돈 보내 주는 자식도 특별한 수입원도 없으신데 할머니가 쌈지돈이 있음 얼마나 있으셨겠어요?
제가 쭈삣쭈삣하자 할머니는 왜? 할미 돈 없을까 봐 라고 하셨고 전 조심히 고갤 끄덕였어요.
할머니께선 웃으시더니,
제 머릴 쓰다듬어 주시며 가자, 우리 좋아 고기랑 밥 먹자! 라고 하시며 제 손을 잡고는 어디로 가셨고, 전 고기라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져 쫓아갔습니다.
얼마쯤 가서 몇 개의 골목을 거치곤 어느 집 대문 앞에 이르렀어요.
그곳은 다른 집과는 달리 이상한 깃발도 꼽혀 있고 절에서 쓰는 등도 달려 있던 그런 집이었죠.
그 집 앞에 도착을 했는데 할머니가 분명 부르시지도 않고 초인종도 누르지 않았는데, 안에서 사람이 급하게 나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문을 열고는 깊숙히 허리 숙여 인사를 하더군요.
전 어린 맘에도 참 신기했어요.
어떻게 알고 나왔지? 하고요.
할머니는 인사하는 아주머니(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주인이신 무녀 아줌마였어요.)를 본체 만체 하시곤 흡사 자기 집 들어가시 듯 자연스럽게 그 집 안으로 들어 가셨어요.
그리고는 밥 좀 차려 봐. 애기 먹을 거니 신경 써서 이것 저것 좀 차려 오게. 하시는 거였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랫 사람 부리 듯 하셨고 아주머니는 당연 하다는 듯 공손히 대답하시고는 우릴 안방으로 안내하셨어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는 정말 푸짐한 밥상이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아주머니는 같이 밥을 드시지 않고 할머니 옆에 앉아 꼭 사극을 보면 중전 마마나 대비마마에게 하 듯 반찬도 올려 드리는 등 수발을 들어 주시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전 오랫만에 보는 고기 반찬에 온통 신경이 팔려 있었어요.
집에선 매일 된장찌개나 두부찌개에 김치랑 나물 몇 가지 간혹 계란 후라이 하나 먹다가, 집에서 먹던 반찬의 3배는 되는 거 같은, 거기다 고기도 소고기랑 닭고기까지 있는 완벽한 밥상에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죠.
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란 할머니 말씀은 콧등으로 듣고 열심히 고기를 흡입하고 있는데, 간간히 할머니랑 아주머니가 도란 도란 나누는 얘기들이 들렸어요.
할머니가 그래서? 음.... 등 아주머니 말씀에 추임새를 넣으시며 들으시다가 뭐라고 얘길 하시는 소리가 들렸고, 아주머니는 네...감사 합니다 등의 말로 공손히 화답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식사가 끝나군 할머니께서 제가 다 먹길 기다리시더니 다 먹었냐? 그럼 가자! 하시며 미련 없이 자릴 털고 일어 나시더군요.
아주머니는 따라 일어 서시며 언제 준비하셨는지 하얀 봉투 하나를 할머니께 공손히 건넸고 할머니는 의당 당연 하다는 듯 받아 챙기셨습니다.
문밖까지 나와 깊숙히 허리 숙여 인사하시는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고, 할머니께선 차를 타기 전에 시내 큰 슈퍼에서 제게 과자를 한아름 사 주셨어요.
그리고 계산하실 때 아까 아주머니에게 받은 하얀 봉투에서 돈을 꺼내 주셨고, 전 그제야 아주머니께서 할머니께 드린 봉투가 돈이었단 걸 알았어요.
그 뒤로도 장날이면, 비가 오지 않는 날마다 꼭 할머니랑 장구경을 갔었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그 아주머니네 집 이외에도 여러군데를 다니셨는데 한 번 갈때마다 한 집만 가셨지요.
.
그리고 할머니가 가시는 집은 예외 없이 할머니를 큰절로 맞으며 극진히 대접했고, 여기에 저도 덩달아 호사를 누렸답니다.
할머니가 어떤 집은 그냥 지나치셨는데(무당집) 제가 왜 저 집은 안 가냐고 여쭈면, 저 집은 가짜야 라고 대답하시곤 하셨죠.
그러다 한 번은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할머니께선 그런 가짜 무속인 집을 보셔도 그냥 눈살 한 번 찌푸리시곤 지나치곤 하셨는데, 한 번은 정말 한참을 서서 지켜 보시더니 갑자기 화가 폭발하셔선 그 집으로 뛰어 들어 가신 적이 있었죠.
그 집은 좀 젊은 우리 엄마 보다 좀 더 나이 들었을 아줌마가 점을 치시고 계셨고, 손님도 몇 분이 대기하고 있었어요.
뛰어 들어가신 할머니는 다짜고짜 점 보는 탁자를 잡아 엎으시고는 그 아주머니께 호통을 치셨어요.
전 할머니 행동에 놀라 쫄래쫄래 마루까지 따라 들어 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이런 되지도 않은 망할 X이 어디서 귀신 팔아 가지고 사람들한테 사기 치려고 한다며 고래 고래 고함을 치셨어요. 그러시고는 내가 호구지책으로 그냥 밥벌이나 하려는 것들은 그냥 큰 피해 안 주고 밥이나 먹고 살려고 하는 것들이라 여겨 그냥 뒀는데, 넌 사기 치려고 맘 먹은 X이니 내가 그대로 보고 지나칠 수 없다시며 그 아줌마를 쥐잡 듯 했고, 그 아줌마는 말 대꾸 한 마디도 못 하셨죠.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다음 번에 와서도 그냥 여기 이러고 있으면 좋게 안 끝난다는 요지로 말씀 하시곤 그 집을 나오셨는데,
그 다음 장날에 가보니 이미 다 정리하고 도망갔더군요.
그 날 할머니가 순례하신 집에서 들으니 할머니가 난리 치신 그 날, 밤에 혼이 빠진 상태로 싹 정리해 상주를 떠났다고 하더군요.
상주 할머니의 과거등은 저도 아는 게 없어요.
젊으셔선 뭘 하신 건지 어떻게 지내신 건지.
다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큰 신을 모셨던 무당이 아니셨을까?
혹은 신을 담고 계시지만 무업은 안 하신 은둔 무속의 거목이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향후 상주를 갈 일이 생긴다면 할머니에 대해 한 번 알아 봐야 겠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잡고 따라 다닌 무속인 집들이 아직 어렴풋이 몇 군데 기억이 나고, 그 분들이 아직 그곳에 살고 계신다면 다들 한 60대 정도이실테니.
이번 편은 그저 할머니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이다 보니 정작 독자들이 좋아 하시는 귀신 얘긴 없네요.
다음 편 쓸 때는 본격적으로 귀신 얘기를 해 드리죠.
호응이 없으면 쓰기 참 애매한데.....
그리고 제 기억이 어린 시절 기억이라, 대화 등은 단편 단편 기억하는 것에 살을 붙여 쓰는 겁니다. 저런 기억을 다 할린 없죠? 그렇다고 얘길 쓰면서 이런 얘길 했던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고 쓸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댓글 달아 주시면 감사하지만, 질문은 하지 말아 주십시요.
전 댓글에 답은 안 할 겁니다.
그런거 때문에 괴담 게시판에 분란 일어나는 걸 여러 번 봤으니까요.
From_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5651438&bbsId=G005&itemId=145&pageIndex=1
'Paranormal or Horror Act > <상주 할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5 (0) | 2016.07.07 |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4 (0) | 2016.07.07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3(下) (0) | 2016.07.07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3(上) (0) | 2016.07.07 |
[루리웹 - 백두부좋아]상주할머니 2 (0) | 2016.07.07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2016.07.01 트래커
'Util'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5.13 트래커 (0) | 2017.05.15 |
---|---|
2015.01.01 트래커 (2) | 2015.01.02 |
2014.06.17 트래커 (0) | 2014.06.26 |
SmiSync Portable Ver.2.2 (0) | 2013.08.23 |
MP3 to SWF Converter Portable (0) | 2013.08.23 |